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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서병구 안무가, 새로움 앞에 나이 들지 않는 예술가 [No.195]





서병구 안무가
새로움 앞에 나이 들지 않는 예술가

“뮤지컬계를 대표해 큰 상을 받게 돼서 감사합니다. 뮤지컬계에는 저보다 자질이 훌륭한 크리에이터와 배우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큰 상을 주신 것에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이 영광은 뮤지컬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2019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수상자는 안무가 서병구였다. 뮤지컬인이나 안무가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990년 <캣츠>의 배우이자 안무가로 뮤지컬과 인연을 맺은 그는 지난 30여 년간 <동숭동 연가>, <명성황후>, <라카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프랑켄슈타인> 등 창작과 라이선스 뮤지컬을 넘나들며 매해 10편 정도의 작품에 참여한 국내 대표 뮤지컬 안무가이자 뮤지컬인이다. 뮤지컬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뮤지컬계를 대신해 받았다는 소감이 겸양의 표현만은 아니다.


뮤지컬과의 인연

지금은 뮤지컬 안무가로 명성이 더 높지만 한때 그는 MBC무용단의 수석 안무가와 단장으로 그리고 넘사벽의 댄서로 더 유명했다. 그는 무용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용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한국무용을 배우고 대학에서도 전공을 했지만, 그의 영혼 반쪽은 화질 나쁜 AFKN에서 맛봤던 밥 포시 스타일과 허슬, 디스코, 마이클 잭슨 춤으로 가득했다. 대학 댄스 연합 동아리의 댄서 겸 안무가로 캠퍼스 축제 무대를 휩쓸며 끼와 재능을 발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뮤지컬과의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다양한 춤을 섭렵하며 이미 뮤지컬 안무가로서의 자양분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무용과 TV 쇼 댄스, 컨템퍼러리 댄스 등 다양한 춤 스타일을 체득해 가던 그는 1990년 <캣츠>의 마술사 고양이 미스토펠리스로 출연을 제안받았다. 이것이 그가 배우로 뮤지컬 무대에 선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다. 미스토펠리스는 노래를 하지 않지만 고도의 발레 테크닉과 춤 실력을 갖춘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캣츠>로 뮤지컬 춤의 맛을 본 그는 재공연에서는 안무를 겸하면서 드디어 뮤지컬 안무가로 첫발을 뗀다. “색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어요. 방송 댄스는 난이도 있는 춤을 구성 있게 짜면 되지만 뮤지컬 안무는 그 안에 드라마가 있잖아요. 안무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때만 해도 뮤지컬 공연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침 그때 컨템퍼러리 댄스를 배우러 영국과 뉴욕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클래식한 댄스뿐만 아니라 컨템퍼러리 시어터 댄스와 재즈 댄스를 접했다. 서병구 안무가는 국내 대표적인 밥 포시 전문가로 손꼽히는데 뉴욕 클래스에서 밥 포시의 수제자에게 밥 포시 스타일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당시 인기를 끌던 뮤지컬 빅4 작품들이나 기타 뮤지컬을 직접 보면서 언젠가는 뮤지컬 안무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키우게 된다. <캣츠> 이후 <장보고>, <동숭동 연가> 안무 의뢰가 들어오면서 서서히 방송국 무용단 단장보다 뮤지컬 안무가로서 인지도가 높아지게 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2007년 이후 서병구 안무가는 한 해 많게는 10여 작품에서 적게는 7~8편 정도에 참여해 왔다. 재공연을 포함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적게 잡아도 200여 편 이상을 해온 셈이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뮤지컬 작품에 참여한 크리에이터일 것이다. 지금까지 참여한 수백 편의 작품 중 우열을 가려달라는 질문은 어리석을 것이다. 그래서 작업 과정이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를 최고의 뮤지컬 안무가로 각인시킨 <명성황후>를 먼저 꼽았다. “<명성황후>는 20년이 넘게 해왔고 전공인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안무였기 때문에 애착이 가요. 전통적인 한국무용이 아니라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면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넣었잖아요. 윤호진 연출님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라 인상 깊어요. 또 하나는 2008년도에 한 <내 마음의 풍금>이에요. 김문정 작곡가, 조광화 연출가와 셋이 뭉쳐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면 논의를 통해 더 발전시키고 하면서 공연이 올라가기 전까지 이런 과정을 지속했어요. 서로 마음이 맞아서 의견이 충돌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창작진이 의견을 나누며 만든 작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창작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걸 느꼈죠.”

서병구 안무가는 작품에 참여할 때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동작을 짜는 것보다 생각을 나누는 데 시간을 더 보내는 것 같다고 한다. 특히 작품에 어울리는 소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한다. “사실 안무가는 춤만 잘 짠다고 되지 않아요. 작품을 잘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안무가로서 생명력이 있고 춤이 더 돋보일 수 있어요. 그러려면 미학적인 오감을 여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해요. 요즘은 그런 노력보다는 동작 짜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 같은데 그 점은 안타까워요.” 뮤지컬 안무 경력 30년. 안무에 대한 생각도 점차 변해 갔다. 처음 안무를 맡았을 때는 욕심이 많아서 안무가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짰다. 저건 서병구 안무라는 도장을 박아 넣고 싶었다. 그렇게 안무가 돋보여야 스스로도 만족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안무가 작품과 꼭 잘 어울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참여하는 뮤지컬이 늘어가면서 뮤지컬 안무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 갔다. 뮤지컬 안무는 드라마틱하면서 쇼적인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뮤지컬 안무에 대해 정의했고 논문을 쓰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안무에는 정답이 없어요. 뮤지컬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각각의 뮤지컬에 안무를 어떻게 녹여내느냐가 중요한 거지 뮤지컬 안무가 어떠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더라고요. 작품의 컨셉에 맞으면 안무가 실험적이든, 드라마틱하든, 시적이든, 전위적이든 상관없는 거 같아요.” 그러면서 말미에 뮤지컬 안무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평생 춤을 추고 30여 년 동안 수백 편의 뮤지컬 안무를 해온 결론으로는 허무하지만 오히려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공감을 하게 된다.



나이 들지 않는 실력

올여름 제8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식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은 서병구 안무가였다. 원래 마련된 무대는 아니었지만 커튼콜 인사를 하러 나온 그에게 춤을 요청했고 즉흥적으로 춤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 있던 영화 <라스베거스를 떠나며>의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리셉션장에서 감상을 전했다. “당신 춤 때문에 앞서 추었던 댄서들의 춤이 초라해졌다.” 피기스 감독은 덧붙여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배우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제자들을 초라하게 만든 그 춤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보다 더 유명한 것은 <올 댓 재즈> 커튼콜에서 배우들의 요청으로 즉흥적으로 춤을 선보인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가만히 고개를 숙인 서병구 안무가는 음악에 몸을 실어 즉흥 댄스를 선보인다. 이 동영상에는 그 춤을 언어로 가장 잘 설명한 ‘춤을 춘다기보다 춤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나도 그 댓글을 봤어요. 춤을 출 때 무아지경에 빠지거든요. 내가 무슨 춤을 췄는지 나도 몰라요. 음악에 몸을 맡긴다고 생각해요. 순서를 정해서 이렇게 춰야지 했으면 그런 느낌은 안 나올 거예요.”

공연 기자로서 보너스는 이런 생생한 순간을 취재의 명목으로 직접 목격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이다. 서병구 안무가는 종종 안무 지도를 한 후 직접 시범을 보일 때가 있다. 배우들이 배워 나가는 과정이어서 더 그러겠지만 연습 과정만 보면 저 댄스 장면이 어떻게 무대화될지 감이 잘 안 온다. 그런데 서병구 안무가가 짧게 시범을 보이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이해된다. 아! 저 느낌이구나!

서병구 안무가는 <라카지>로 안무상을 받을 때 수상 소감으로 80세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하겠다는 장난 섞인 포부를 밝혔다. 뮤지컬과 연을 맺은 후 지난 3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꾸준히 몸의 유연함을 잃지 않기 위해 몸을 푼다. 몸이 새로운 감각들을 익히는데 직접 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돼서 유튜브에 좋은 안무가 있으면 똑같이 따라해 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홍대 클럽에 나가 어느 정도나 출 수 있는지 현재의 자신을 체크해 본다. 서병구 안무가가 홍대에 뜨는 날은 눈은 호강하겠지만 홍대 클럽을 찾은 손님들에게는 운이 나쁜 날이다. 전문 댄서들조차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의 춤인데 누가 그 옆에서 춤을 추고 싶겠는가.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매너리즘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작품을 하다 보니 늘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 쉽지 않다. 각 작품 안무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대본에서 나온다. “영감을 받기 위해 평소에 오페라나 영화, 그림 전시회를 많이 보러 다녀요. 그림의 색감이나 구도, 조각은 대조와 대비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줘요. 무대도 하나의 그림이잖아요. 배우들이 어떻게 서고, 어떤 소품을 이용할 때 대조와 대비가 되고 춤이 돋보이는지를 고민해야 하죠. 공연보다도 전시에서 더 영감을 받아요.”

지난 제8회 예그린 어워드에서는 안무상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지난해 <미인>으로 같은 상을 받기도 했지만 올해 시상자 선발 기준이 이전 수상자 중 선배 격인 분이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안무상 수상자는 신선호 안무가였다. 현재 활동하는 대부분의 뮤지컬 안무가가 그렇듯 신선호 안무가 역시 MBC무용단 시절 서병구 안무가의 지도를 받았다. 서병구 안무가는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한편 12년째 동서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예술성이다. “나의 테크닉이 아니라 나에 대한 예술성을 배워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저 역시 요즘 젊은이들의 감각이나 트렌드, 지향하는 방향성을 많이 배워요. 이들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같은 시선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흔히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서병구 안무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가 수십 년 동안 현역을 유지하는 데는 젊은 세대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 감각을 받아들이려고 한 열린 자세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어떤 예술가, 어떤 안무가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가 가고 있는 길을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 돌아왔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늙지 않는 예술가” 80세 아니 그 이후에도 여전히 열린 사고, 열린 감각으로 현장에서 만날 것 같은 서병구 안무가가 있어 한국 뮤지컬은 참 든든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박병성
사진 | 심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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